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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베 참봉 나으리..

한나무2 2019. 8. 15. 00:00



 

67년 전 해방 이듬해 숨을 거둔 김용환(金龍煥 1887∼1946년)은

조선에서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노름꾼으로

안동에서 이름을 날린 파락호(破落戶)였다.

 

도박에 빠져 아내가 아이를 낳는 줄도 모르고 땅 7백 마지기를 노름으로 날리고,

아내 손을 잡으며

“미안하오. 오면서 깊이 뉘우쳤소. 이제 달라지겠소.”

라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이내 집에 있는 땅문서를 들고 투전판으로 달려갔다.

안동 노름판이란 노름판에는 모조리 끼었던 김용환은

초저녁부터 노름을 하다가 새벽녘이 되면 판돈을 모두 걸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돈을 따면 좋고,

실패하면 도박장 둘레에 숨겨놓은 아래 사람들을 시켜 판돈을 덮쳐

유유히 사라졌던 김용환.

 

그러던 끝에 대대로 이어온 종갓집과 논과 밭 18만 평(요즘 돈 200억 원)을

모두 팔아넘기고,

사당 신주까지 팔아치우려는 것을 문중 사람들이 뜯어말리기를 여러 차례.

급기야 시집간 무남독녀 외동딸이 신행 때 친정집에 가서 농을 사오라고

시댁에서 받은 돈마저 가로채 노름으로 탕진하고는 헌 농짝을 들려 보냈다.

 

김용환은 노름꾼 아비를 둔 탓에 지은 죄도 없이 주눅 들어 시집살이 하는

외동딸을 애써 외면한 비정한 아비였다.

형편이 이러했으니 동네 사람 둘만 모이면 온통 김용환을 씹어댔다.

오죽하면 윤학준은 <양반동네 소동기>라는 책에서

근대 우리나라 3대 파락호로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1930년대 형평사(衡平社) 운동 투사였던 김남수(金南洙)

그리고 김용환을 꼽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도 모르는 반전이 숨어있었다.



 

김용환은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4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얼추 세월이 흐른 뒤 여러 증언과 자료가 노름빚으로 탕진한 줄만 알았던

집안 재산이 만주 독립군 군자금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드러내,

노름꾼 김용환이 사실은 독립투사였음을 밝혔다.

 

김용환이 전 재산을 털어 남몰래 독립운동을 돕게 된 데는

할아버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김흥락이 사촌인 의병대장 김희락을 숨겨줬다가

왜경에게 들켜 종가 마당에서 꿇는 치욕을 겪는 모습을 본 김용환은

항일운동에 몸 바치겠다고 마음먹고,

식구들이 고초를 겪지 않게 하려면 은밀히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일제 눈을 피해 독립군 군자금을 대려고 철저히 노름꾼 노릇을 했던 김용환,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평생 주색잡기,

파락호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숨을 거두기에 앞서 속을 잘 아는 오랜 친구 한 사람이

“이제는 말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고 짚었지만

“선비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

며 눈을 감았다.

 


반세기가 흐른 1995년.

정부는 김용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평생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외동딸 김후웅은

아버지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던 날,

존경과 회한을 담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편지를 남겼다.


“…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 세에 청송 마평 서씨 문가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대려고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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