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간다,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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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숲../나무기억.. 18

그때가 좋았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말하곤 합니다.. '그때가 좋았지'.. 무엇이 좋았는지.. 어떻게 좋았는지 물어보면.. 저마다 대답이 다릅니다.. 정말 그때가 좋았을 수도 있고.. 오래전 그 시절이.. 망각과 각색을 거쳐.. 좋은 기억으로 변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과거는.. 적당한 상실과 기억의 오류로.. 실제와는 다른 상태로 포장되어.. 새롭게 기억창고에 저장되곤 합니다.. 누구도 쉽게 증명할 수 없는.. 착색된 과거는 그래서 늘.. 아름답거나 행복하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진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난 시간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어렸던.. 젊었던 날들이 좋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청춘의 날이 좋지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시간이 멈춘 곳..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어김없이 흘러가고.. 거침없이 지나간다.. 시간은 결코 머무는 법이 없다.. 시간을 품은 빛이 우주를 달려와.. 우리에게 별의 반짝임을 알려줄 때.. 그 별의 시간은 아득한 과거에 존재하여.. 현실에서는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다.. 명멸하는 별처럼..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현실도..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더러는 묻히고 더러는 잠긴다.. 오직 사라지지 않는 기억만이.. 지나간 풍경을 붙잡고.. 그리운 순간을 다시 그려낸다.. 추억은 시간을 박제한 액자인 셈이다.. 다시 오지 않는.. 다시 볼 수 없는.. 다시 할 수 없는.. 모든 기억에 시간의 못을 박는다..

골목길의 추억..

골목길을 가다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저마다의 취향을 알게 된다.. 담장을 너머 피는 꽃들도 그렇다.. 같은 시기에 피고지는 꽃들도.. 집주인의 성격을 닮아있다.. 어느 집은 화려하고, 누구네는 수수하다.. 집은 그렇게 주인을 닮는다.. 담장 아래 심어진 작은 화초도..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지 모른다.. 맨드라미, 채송화, 과꽃, 꽈리꽃.. 볕이 드는 곳이면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 누구나 기억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이제는 사라져가는 골목길의 풍경이다.. 골목길을 만나는 것 조차 힘든.. 아스라한 기억을 추억한다..

인생수업 1..

머리털이 아닌 몸털 가운데.. 흰색털이 보이는 나이가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깊어지고.. 대화가 변하고.. 관심이 옮겨간다.. 살아온 시간보다.. 다가올 앞날을 기대하는.. 청춘의 날이 저물고.. 인생은 황혼의 경계를 넘어간다.. 여전히 부지런한 걸음으로.. 바삐 내딪는 이가 있고.. 자주 쉬어가며 미련의 뒷걸음으로.. 돌아보는 이도 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된다.. 달라진 것은 몸보다 마음이라는 것을.. 어느새 마음에서 욕심이 빠지고.. 하얗고 투명한 마음이 자라는 것을.. 그렇게 인생은 낯선 배움을 시작한다..

그때 그곳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변함없는 집이 나온다.. 그때 그곳에서.. 행복했던 유년의 모습과 함께.. 잊을 수 없거나.. 잊지 못하는 대부분의 기억도.. 옛집의 처마와 마루에서.. 시작되고 멈춘다.. 시간이 지나 변해버리고.. 세월의 흔적속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기억 한켠에 생생하게 남아.. 언제나 반겨주는 가슴에 품은 집.. 그 골목, 그 시절.. 그 냄새, 그 사람들.. 시간의 사진관에 박제된.. 꿈같은 아쉬움..

겨울회상..

눈내린 날 아침.. 왠지 신이나서 일찍 돌아다니다보면.. 아직 아무도 밟지않은.. 뽀얀 눈밭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뽀드득거리는 눈소리를 발로 들으며.. 마치 땅을 차지한 이주민처럼.. 여기저기 발도장을 찍고다니다가.. 젖어버린 신발에 발이 시리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면.. 눈이 녹아있는 자리가 보이곤했는데.. 그곳에는 놀랍게도 초록풀이 자라고 있었다.. 마치 풀잎의 온기로 눈을 녹인듯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생생함에.. 신기해서 더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밥 때를 놓치지기 전에 집으로 가면.. 구수한 시레기된장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그릇의 맛이 무척이나 그리운 겨울이다..

겨울 고드름..

확실히 예전 겨울이 더 추웠다.. 기상대의 기록과는 별개로.. 겨울 추위를 심리적으로 비교하면.. 지나간 겨울이 확실히 추웠다.. 겨울 동장군이 고드름을 만들기 시작하면.. 더 이상 방안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팔보다 긴 고드름을 꺽어서.. 칼싸움을 해야했다.. 몇 번 무사처럼 휘두르다보면.. 어느새 고드름칼은 조각나버리고.. 한참 그렇게 열이나게 놀다보면.. 땀이 나고 목도 말랐다.. 그러면 고드름을 입안에 삼키고.. 아그작 씹어먹었다.. 겨울 고드름의 투명한 얼음맛.. 그보다 확실한 겨울맛은 없었다.. 겨우내 고드름이 시리도록 자랐다..

가을냄새..

가을은 딴 계절과는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봄이 풋풋한 풀내음과 꽃향기를 품고 있다면.. 여름은 좀 더 진하고 강한 신록의 향을 가졌고.. 가을은 그것들이 익은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비에 젖어 뒹구는 플라타너스 잎의 냄새와.. 여기저기 익은 채로 뒹구는 은행나무 열매의 냄새.. 담장 너머 화단에 심어진 진한 국화꽃향과.. 아궁이에 나무타는 냄새가 뒤섞인..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진한 향수같은.. 독특하고 깊은 계절의 냄새를 지녔다.. 마른 풀이나 갈대에서 풍기는 햇살냄새도.. 가을에만 맡을 수 있는 별향이다.. 무리지어 떨어진 단풍나무의 붉은 잎들이 내는.. 겨울을 부르는 독특한 주문같은 냄새며.. 옷장에서 새로 꺼낸 옷들에서 떨어져 나온.. 미쳐 떨어지지 않은 먼지냄새까지.. 가을은 참 ..

시간이 흐른 뒤에..

기억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오는.. 그림자와 달리.. 기억은 생성된 그 곳에 남겨진.. 흔적과도 같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멈추어버린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변색되거나 탈바꿈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돌아보면 아름다운 시절도.. 속을 살펴보면 고통스럽고.. 눈물이 넘쳐나는 괴로운 순간이 있고.. 여전히 바보같은 선택이 있다.. 기억의 창을 닦는 것은.. 어쩌면 망각이라는 수건일지도 모르겠다..

걸음..

이동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걷거나 뛰는 것.. 가끔 뒹굴기도 하고 기어가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놀이의 행위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오직 부지런히 걷거나.. 숨이 가쁘도록 달리는 것이 다였다.. 그보다 건강한 방법은 따로 없었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손오공의 근두운이나.. 단숨에 멀리가는 홍길동의 축지법이.. 부럽고 신기하고 대단했지만.. 크게 욕심나지는 않았다..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 그래서 하루종일 달릴 수 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그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지.. 만보기를 확인하며 걷는 지금.. 새삼 감사하다..

지나간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갑오경장 이야기를 하곤 했다.. 도통 짐작도 할 수 없는 옛날이야기를 말이다.. 갑신정변이니 갑오경장이니 하면.. 아득한 역사속의 꾸며낸 일 같지만.. 그때는 도포입고 갓쓴 어른들이 지천이던 때라.. 그분들 입장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 다음으로 아주 흔한 이야기가.. 광복과 전쟁이야기였다.. 그 또한 실감 안나기는 매한가지라.. 그랬었구나 하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조선말기부터 일제와 난리통에 태어난 분들은.. 하실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그분들에게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기억하고 함께하는 현실이였던 것이다.. 그분들의 나라에, 지금 우리가 산다..

한여름..

매미소리 말고는.. 돌아다니는 것이 없는 한여름.. 정수리에 이글거리는 해를 이고.. 모험을 떠났다.. 숨을 할딱거리며 걷던 걸음이.. 적당한 나무그늘을 찾아 멈추며.. 나무통에 아이스께끼를 담은 남자가.. 살갑게 다가왔다.. 십원 동전 몇 개와 바꾼.. 한여름의 아이스께끼.. 그 맛은 그후에 먹은.. 어떤 아이스크림과도 비교할 수 없다.. 두꺼비보다 큰 먹개구리가.. 도랑을 건너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면.. 여름 긴 해는 어느새 서산을 파고들고.. 보기좋게 살을 태운 무리는 집을 향했다.. 미류나무 위로 구름이 한없이 높이 걸리던 여름날에..

그해 여름..

적당한 거리가 있었다.. 놀러가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심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일종의 부모안심 거리였다.. 물론 놀러가는 입장에서는.. 하등 상관없는 거리였다.. 지칠만큼 멀리가서.. 해가 질 때까지 놀면 그만이였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집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하물며 놀때는 시간이 더 빨리간다.. 밤은 또 금새 찾아온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그날의 사냥거리를 챙겨서 돌아오면.. 대문 입구에서 부터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정없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하천에서 다 태운 까만 얼굴로도.. 완벽하게 숨을 수는 없었고.. 쏟아진 주전자에서 튀어나온.. 송사리며 미꾸라지를 줍느라 야단은 귀밖이였으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새로운 여정을 떠나기 일쑤였..

오래전의 기억..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무 것도 잊지않고 있었다.. 기억의 창고로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임과 기대로 두근거렸다.. 이미 지나온 일에 대한 기억인데.. 새삼스러울 만큼 신기하고 놀라울 때가 많다.. 기억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 아득한 시간의 다리위에서 지켜보노라면..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내가.. 정신없이 웃고 있다.. 누군가 나를 향해 웃고 있고.. 그 모습에 반응하며 웃는 것이였다.. 그 모든 것에 사랑이 담겼음을 아는 지금.. 고마움과 그리움이 함께 피어난다.. 내가 그랬듯이.. 네가 아이였을 때도.. 그렇게 웃음이 많았음을.. 기억하며 행복해지기를..

빛나는 시절..

세상에는 빛나는 것들이 많았다.. 길바닥에도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마치 사금처럼 작게 반짝이는 것들.. 흙속에 부서진 금속들이.. 햇빛에 부서지며 반짝거렸다.. 개울가에는 더 많은 반짝임이 있었다.. 물고기떼가 지나갈 때마다.. 물결 아래는 고기비늘의 반짝임으로 가득했다.. 가끔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비늘도 지나갔다.. 풍뎅이나 벌레의 파르스럼하게 빛나는 날개는.. 기어코 잡아야하는 유혹이었다.. 더군다나 금풍뎅이는 참을 수 없는 전율이었다.. 날아다니는 황금 그 자체였다.. 그 모든 것보다 빛나는 것은.. 밤마다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이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마당에 나가면.. 머리위로 무섭도록 빛나는 별들이 내려왔다.. 그때는 모든 것이 빛나는 시절이였다..

집냄새..

담장 너머.. 많은 것이 궁금하던 시절.. 대문밖의 세상은.. 언제나 요지경이였다. 한가닥씩 뻗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잇는 것도 재미있지만.. 정말 즐거운 일은.. 낯선 동네를 탐험하는 일이였다.. 늘 보던 풍경이나 사람이 아닌.. 전혀 새로운 동네에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여.. 담장이며 대문까지도 다르게 보였다.. 가끔 당장너머로 들려오는.. 개소리, 닭소리, 거위소리.. 거위를 개처럼 기르는 집이 가끔 있었는데.. 그 사납기가 큰개보다 더했다.. 그렇게 낯선 동네를 다녀오면.. 익숙한 골목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땅에서도 냄새가 났다.. 가까워질수록 살가워지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집냄새였다..

어느 여름날..

항상 작은 일로 심각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은.. 생각밖의 일이였다.. 당연한 것이 나는 어렸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였다.. 그러니 아무리 심각하고 진지해도.. 그것은 순전히 아이의 시각에서일 뿐.. 어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편이 정확했다.. 동전 몇 개가 남았는지.. 그것으로 얼마 정도의 과자를 살 수 있는지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 그랬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어떻게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하천으로.. 송사리 잡으러 갈지가 문제였다.. 대문만 빠져나가면 되는데.. 오늘따라 아버지가 마당의 꽃들을 전지하느라..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름볕에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아버지가 잠시 물을 ..

기억이라는 선물..

기억은 생각만큼 튼튼하지도 정교하지도 않다.. 많은 기억이 착색되고, 흐려지며, 왜곡되지도 한다.. 심한 경우 송두리채 사라지도 한다.. 기억은 그만큼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그런 기억속에서도 유난히 선명한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뚜렷해지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존재한다.. 강렬한 기억은 인생에 각인된다.. 기억의 반대편에는 망각이 있다.. 되새겨 아프고 슬픈 기억뿐 아니라.. 행복했던 순간도 가끔은 잊어버리게 된다.. 마치 그런 일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뒤섞여버린 기억의 저장 창고에 들어서면.. 바스락거리며 발아래 부서지는 기억들이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기억이다.. 작은 기억의 부서러기들은 뜻밖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기억속에서 가끔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