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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한나무2 2021. 7. 15. 00:00

 

 

그는 일찍부터 Piano를 만질 수 있었다.

Piano Teacher 였던 아버지는 그가 어린 나이일 때부터 Piano를 가르쳐

훗날 그 아들이 성공을 이루는 기초를 다져 주었다.

6살때 그는 모국어인 불어보다 악보를 더 능숙하게 읽었다고 한다.

 

12세에 파리 음악학교에 들어갔고 16세에 수석 졸업하며

Classical Pianist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놀랍게도 얼마 후 Classical Training

에서 Contemporary Music으로 전환하게 된다.

 

"나는 무엇인가 좀 다른 것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Rock Group을 만들었다.

그때가 정말 힘들고 고달픈 기간이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악기구입에 급급하였고, 

샌드위치 먹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17세 나이에 위궤양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아들을 경제적으로 뒷바침해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반주자로, 또는 Session Musician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그 일이 참 즐거웠고, 수입 또한 그 때로선 꽤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Clasical Music이 지금의 내가 될수 있었던 탄탄한 기반이었음에도

그것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의 재능은 곧 눈에 띄어 연주 요청이 쇄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은 1976년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의 유명한 레코드제작자이자 훗날 그의 동업자가 된

Paul de Senneville로 부터 온 전화였다.

Paul은 갓 태어난 자신의 딸 Adeline에게 바치는 발라드를 작곡하여

그것을 녹음할 연주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23세의 Philippe Pages는 다른 20명의 신청자와 함께 오디션을 치뤘고,

결국 그 일을 따내고는 그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그에게 반했다"고 폴은 말한다.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그 부드러운 건반 터치는

참으로 매혹적이었고, 잘 생긴 외모 또한 Olivier Tousaint와 내 맘에도 들었다.

우리는 주저없이 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Philippe Pages란 이름은 Richard Clayderman으로 바뀐다.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그의 증조 할머니의 성에서 따왔다한다.

그의 싱글은 상승세를 타서 2천 2백만장이 38개국에서 팔려 나갔다.

 

그것은 바로 "Ballade pour Adeline" 이었다. "나는 그와 계약하면서 우리가

만 장만 팔 수 있어도 만족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디스코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발라드가 승산이 있으리란 기대를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대 히트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 Oliver는

말한다.

 

이것이 그가 확실한 성공을 거두게된 시작이다. 그때부터 Clayderman의

독특한 Piano Style은 슈퍼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독일의 한 저널리스트는 Clayderman을 일컬어 그는 베토벤 이래로,

전 세계에서 Piano를 누구보다도 가장 대중화시킨 인물이라 한다.

 

Richard 는 그의 Trade Mark인 Classic과 Pop을 결합시킨 New Romantic

Style 을 창조해 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Pop 세계에 유례 없는 7천만장이란

앨범 판매 실적과 아울러 실로 경이적이라 할 267 Gold 와 70 Platinum

디스크의 기록을 세웠다.

 

현재 그는 1000여 곡을 내놓은 가장 성공한 피아니스트이다.